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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백제견훤이
    카테고리 없음 2022. 3. 7. 23:41

     

    고려 왕건에게는 행운이 감도는 모악산

     

     

    금산사는 호남평야와 전라북도를 구분하여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모악산에 있는 사찰이다.

    김제가 볼거리인 금산사로 향하는 산책로는 봄에는 활짝 핀 꽃무릇, 석탑과 함께 자연의 빛깔과 소리로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돼 백제 때 창건된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연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도 중요시되어 중창했다고 하고 금산사 견훤은 장남 신검에 감금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이곳을 탈출한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투항한 것은 왕건에게는 뜻밖의 행운이었다고 한다.

    금산사의 성지(개화문)

     

    삼국시대 금산사 보호를 위해 절 입구에 쌓은 석성으로 1920년대까지는 성문의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예로부터 금산사를 수호하는 성문으로 견훤성문으로 불린다.

    석인상

    사찰 입구에 있는 금산동문 각각이 새겨진 곳 근처에 있었는데 사찰 안쪽에 건물을 새로 지어 봉안한

    모악산 금산사일주문

     

    기둥이 일직선상의 일렬로 늘어서 있어 일주문(一柱門)이라 불리는

    두 개의 기둥으로 하중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건축 기법이 필요하다

    일주문의 특성을 잘 살려 만족스럽게...

     

     

    금산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걷다 보면 금강문과 천왕문이 이어진다.

    해탈교

     

    해탈교를 건너면 금강문이 나온다.금강문은 사찰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금강문

     

    금강문의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으로 불탑 또는 사찰의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 신 아래 모든 비밀스러운 사적을 알 뿐 아니라 오백의 야차신을 거느리고 현겁천불의 법을 수호한다.

    텡노몽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이 나오는 이곳에는 동서남북으로 사찰을 옹호하는 사천왕상이 있다

    당간지주(보물제28호)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요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기둥이다.

    당간지주는 사찰의 성격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 사찰 입구에 세워진다.

     

     

     

    천왕문 오른쪽에 당간지주가 있는데 한국에 현존하는 당간지주 중 가장 완성되고 격식을 갖춘 작품이라고 한다.

    보젤 (개산천사 백주년기념 관)

     

    천왕문을 지나 가람의 중심에 보이는 건물이 보제루, 2층 누각식이고 아래층은 사찰 앞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절에서 누각 건물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잦은 외침으로 승병이 조직되고 사찰이 의승군의 결집 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누각이 번성했다고 한다.

     

     

     

    이후 승병이 사라지고 누각은 법회와 강설 대중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연혁은 잘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 중기 만세루라는 12칸짜리 누각이 있었으므로 이를 계승한 건물로 보인다.

    절의 앞뜰로 올라가는 계단 구실을 하는 즉,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대적광전

     

    당간지주를 거쳐 보재루 계단을 오르면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절의 중심건물인 대적광전이다.

    이렇듯 유서 깊은 금산사에는 수많은 국보와 보물이 즐비해 있다.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로 대웅광명전 또는 대법당으로 불렸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635년(인조 12년)의 수문대사에 의해서이다.

    중수할 때 따로 모신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과 육보살을 통합하여 창건하였다.

     

     

    금산사는 국보로 지정된 미륵전이 매우 유명해 절의 중심 건물로 여겨지지만 금산사 공식의 중심 건물은 대적광전이다.

    조선시대에 중건된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보물 제475호)이 취소되었다.

     

     

    현판은 악필법으로 유명한 석전 황욱의 글씨이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인 삼신불을 모시고 정토사상의 연화장 세계를 담고 있다.

    미륵신앙의 성지에 위치한 금산사는 백제시대부터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사찰로 오랫동안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다.

    적멸 보궁

     

    석가모니 진신사리에 직접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방등계단 옆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예각으로 유리벽을 통해 방등계단에 있는 탑에 예배를 드린다.

    방등계단(보물 제26호) 금강계 단

     

    수계법회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설치하고 삼사와 칠증이 둘러앉아 계법을 전수하는데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양산·통도사·개성·불일사 등에서만 볼 수 있다.

     

     

    불교정신을 대표하는 '계·정·혜삼학'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키는 것은 불교의 기본 바탕이다.

    이계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돌종이 부드러운 선이 되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기단 각 면에는 불상과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기단 앞에 작은 돌기둥이 늘어서 있다.

    오층석탑(보물제25호)

     

    기록에는 9층으로 되어 있어 옥개석의 형태와 체감률 등에서 6층 이상의 손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백제 견훤이 금산사를 창건하고 이 석탑을 세웠다고 하는데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려 4년(979년)부터 성종 1년(982)에 걸쳐 건립되었다.

    정면에 길게 대적광전이 있고 오른쪽에는 방등 계단이 있고 그 옆에는 향을 바꾸어 미륵전이 있다.

    석등 (보물 제828호)

     

    대장전 앞의 석등은 아랫기둥이 갸날픈 줄 알고 바라본... 그려서 전기양식으로 추정되는 석등이다.

    금산사 미륵전 (국보 제62호) 용화전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년)부터 혜공왕 2년(766년) 사이에 진표율사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 가람에 적용하여 건립되었다.

    국내 유일의 3층 불전으로 1.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미륵전은 국보 3증으로 이루어진 목조 불전으로 한국에서 유일하다.

    각 층에는 각기 다른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1층에는 대자보전, 3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으로 불린다.

    이름은 달랐지만 모두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들이라는

     

     

    미륵전의 삼층구조는 대자비심으로 미륵이 발현되는 이상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용화사회가 열리면 말법중생이 모두 구제되어 미륵세계가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륵전 안에는 미륵장육상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다.

    미륵불은 높이 11.82m, 협차 8.78m에 이른다.

     

     

    조성 당시에는 미륵장육상만이 봉안되어 있었다.수문대사가 소조삼존불로 봉안하였으며 불단 아래에는 청동대좌가 있다.

    협시보살로 법화림보살과 대묘상보살이 있다.

    건물 외벽도 인상적이다 주위를 돌며 벽화를 감상하면 좋다.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의 경계 광경이 벽화로 되어 있다.

    금산사 일대는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장전(보물 제828호)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목탑 형식의 건물이다.

    진표율사가 절을 중건하면서 지은 미륵전을 세우고 이를 장엄한 정중목탑으로 삼아 정팔각원당형으로 조성한 건물이다.

    1635년에 원래의 목탑이었던 것을 건물의 형태로 변형하여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건물 위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있어 신라시대의 목탑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장전 안에는 화염광배가 인상적인 석가여래와 가섭아난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목조 대장전과 석등, 미륵전의 배치로 1탑 1금당인 익산 미륵사와 조성된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석련대 (보물 제23호)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의 줄임말, 즉 불상을 얹은 연꽃 모양의 받침대이다.

     

     

    불상의 대좌로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기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석련대의 위치가 현재 위치인지 다른 곳에서 옮겨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규모가 워낙 거대해 원래 위치일 가능성이 크다.

    혜덕왕사 진흥탑비

     

    고려 예종 6년에 세운 현재 탑비에는 귀부와 비신이 남아 있으며 이수 부분은 소실되었다.

    대리석 비문은 높이 2.78m, 너비 1.5m로 손상이 심해 비문이 어렵다.

    그러나 해동금석원 등에 그 내용이 전해진다.

     

     

    비문은 구양순 해서체로 발달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며, 승려의 출생과 교화 활동, 입적 등이 적혀 있다.주변은 당초문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호)

     

    검은색 점판암으로 된 석탑이다.원래는 대웅대광명전 앞뜰에 있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봉천 원구가 소실되자 수문대사가 금산사를 중건하고 현 위치로 옮겼다.

    대적광전과 방등계단, 미륵전을 한꺼번에 광장에 넓게 배치해 한번에 담을 수 없었던 만큼 규모가 크다.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에서 금산사를 말할 때 수평과 수직의 조화라고 한다.

    오랜만에 오랫동안 바람을 안고 뜻깊은 절 금산사 나들이가 참 좋았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행복이 풍만하여 코로나 19로 이겨 건강하고 편안한 날들을 이곳 금산사에서 호텔로 가시길 바랍니다.

     

    2022년 1월 2일 일요일 김제 금산사에서 호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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